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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란 무엇일까 시멘트의 역사 알아보기 1

by 도·흘 2024. 5. 14.

저번 포스팅에서는 정말 간단히 시멘트에 대해서, 그리고 시멘트와 콘크리트의 차이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용어를 항상 혼동하여 쓰고 있던 저는 그 정도의 간단한 수준으로도 조금이나마 시멘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잘못된 사항을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시멘트란 무엇일까 시멘트와 콘크리트의 차이 1

어릴 적에는 잘 발라져 있는 시멘트 바닥을 밟아보곤 싶었습니다. 아무리 주변에 '들어오지 마시오' 표시를 두고서 안전막을 쳐두었다고 해도 제 호기심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호기심

sheddingdopamine.tistory.com

 

하지만 이렇게 간단하게만 짚고 넘어가기에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래서 오늘 포스팅에서는 조금 더 근본적인 접근을 통해서 시멘트에 대해 알아가보고자 합니다. 먼저, 제가 흔히 접했던 한국에서의 시멘트를 알아가기 위해서 오늘은 '한국시멘트협회http://www.cement.or.kr'라는 홈페이지를 참고하여 조금 더 양질의 정보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멘트의 역사

인류가 석회를 사용하기 시작한 기원은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으나, 결합재로써 석회를 이용했던 석회콘크리트가 어느 시대에 있었는지 유추를 하여 그 기원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시멘트를 사용하여 만든 구조물 중에서 현재 남아있는 최고의 것은 이집트 쿠퍼왕의 피라미드입니다. 이 피라미드는 기원전 2,500년 경에 건설되어 외벽에 '모르타르mortar시멘트를 모래와 섞어 물로 반죽한 것'이 도포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석회의 사용이 과학의 발달과 함께 발전해 나갔습니다. 여러 건축과 건설을 하게 되면서 석회가 점토분을 다소 함유하게 되면 '수경성'을 갖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수경성이란 시멘트가 물과 섞여 응결 즉, 만지면 쑥 들어가는 그러한 상태가 되고 이후 시간이 지나 경화되는 특성을 이야기합니다.

 

이어 로만시멘트, 천연시멘트 그리고 오늘날 보통 사용하는 포틀랜드 시멘트의 제조법에 토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멘트 제조 방법이 연구와 개발을 통해 발전되어 갔습니다.

 

1824년 애스프딘J. Aspdin은 석회석을 구워 생석회를 만들고, 이것에 물을 가해 점토와 혼합하고, 다시 고온에서 소성하고 분쇄하여 시멘트를 제조하는 방법을 개발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중소성방식은 이전까지의 시멘트보다 품질이 우수하여 특허국의 특허까지 받았으며, 이후 가장 대중적인 포틀랜드 시멘트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1845년 존슨I. C. Johnson은 석회석과 점토의 비율, 소성하는 데 적절한 온도 등 제조조건을 찾아가며 시멘트 제조학의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렇게 오늘날까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포틀랜드 시멘트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시멘트 사용

한국에서는 '동국여지승람', '임원십육가' 등 석회석 지대와 같은 곳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와 같은 문서에도 석회를 소성하는 방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등 한국에서도 석회를 다양하게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문종 대에 '문종실록'에도 보면 통사를 통하여 중국에서 석회소성법을 배우고 오게 하기도 하였고, 그렇게 기술적인 면에서도 외국과 교류를 하며 들여온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 석회의 사용은 주로 성벽을 만들 때 돌과 돌 사이를 점토나 석회를 가지고 메웠다거나 하는 곳에 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국내 시멘트 산업

해방 전

일본의 통치하에 시멘트 산업은 '청일·러일 전쟁',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군수산업으로써 급격한 발전을 이뤘습니다.

 

광복 ~ 1961년

당시 대부분의 주요 산업시설은 북한에 편재되어 있었고, 광복6·25를 거치며 많은 생산시설이 파괴되었습니다. 이후 1952년에 이르고서야 서서히 다시 시멘트 산업 공장을 가동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1962 ~ 1971년

1961년 2개사에 불과했던 시멘트산업 업계는 1, 2차 경제개발계획이 지나고 1971년에 이르러서 8개사로 늘어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연간시멘트 생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만성적인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되기도 하였습니다.

 

1972 ~ 1982년

그간 경제성장에 따라가기 위하여 양적인 생산에만 몰두했다면, 70년대에 들어서 질적인 면으로도 시멘트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양과 질의 균형을 찾아가면서 환경적인 면으로도 시멘트 산업의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1983 ~ 1992년

한국의 시멘트 산업은 이제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고도화된 기술과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용도의 시멘트 산업 영역을 넓혀나가게 되었습니다.

 

1993 ~ 1999년

수많은 주택을 건설하기 위해 시멘트 수요가 급증하면서 호황이었던 시멘트 산업은 1997년 이후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불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굴지의 기업들마저 부도가 나며 시멘트 산업이 어려움에 빠졌으나, 그 안에서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2000 ~ 현재

경제적으로 점차 안정을 찾아가게 된 한국에서 시멘트 산업은 재도약할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의 기업들도 외국과 공동경영을 하는 등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이르러 수입산 시멘트의 증가, 여러 대체재의 등장으로 시멘트 수요가 줄어드는 등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였고, 점차 환경적인 면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안전과 친환경 등 시멘트 산업이 나아가야 할 중요한 시대에 이르렀습니다.

 

 

북한의 시멘트 산업

해방 이후 60년대

전쟁으로 파괴된 여러 산업시설들을 복구하기 위해 시멘트 산업의 빠른 발전을 추진하였습니다.

 

70년대

시멘트 생산에 주력하였고, 덴마크, 일본 등 해외로부터 설비를 도입하기도 하였습니다.

 

80년대

기존 계획이었던 시멘트 생산목표를 크게 증대하여 이에 따라 여러 공장과 설비 시설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존에 계획했던 2,000만 톤이 넘는 목표에는 미처 이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90년대 이후

심각해진 자재난으로 생산보다는 자재확보에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후 시멘트 산업을 주요 사업으로 추진하였으나 낮은 가동률과 낮은 품질로 기대에 미치진 못하였다고 합니다.

 

2000년 이후

국가적으로 경제적인 위기 속에서 시멘트 산업에 대한 투자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기존설비를 개선하면서라도 생산량을 늘리고자 하였으나 실적은 미미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남한과 북한의 시멘트 생산능력 비교 ~ 2009년

 

남한과 북한의 시멘트 생산량 비교 ~ 2009년

 

그래프의 기준이 2009년대로 꽤나 오래전 자료입니다.

 

이 자료 내에서는 남한과 북한 모두 1990년대에 이르러서부터 생산능력, 생산량이 다소 정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내 시멘트 산업의 위상

북한과의 비교 과정에서 그래프 출처는 2009년에 멈춰있지만, 세계에서의 한국 시멘트 산업의 위상은 아직 건재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 건재하다는 표현은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22년 기준 생산 : 세계 13위

22년 기준 소비 : 세계 12위

22년 기준 수출 : 세계 16위

 

세계 상위 14대 시멘트 생산국 현황

 

세계 상위 14대 시멘트 소비국 현황

중국이 세계 생산량과 소비량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2순위인 인도(7%~), 3순위인 미국(2%~)과도1% p 이상으로 차이가 나는 한국의 시멘트 산업입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저번 포스팅에서 가볍게 시멘트, 콘크리트의 정의에 대해 알아보았던 것에서 나아가 역사를 조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북한과의 시멘트 산업 비교,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적인 비교에서 한국의 시멘트 산업에 대해 약간이나마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한국시멘트협회에 회원사로 연결되어 있는 한국의 시멘트 기업들에 대해 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글 마치겠습니다.